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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묵서화엄경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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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   백지묵서화엄경사경
지정유무 :   비지정
국적/시대 :   한국 / 조선시대
재질 :   지류(紙類)
크기 :   19.0*15.0
용도/기능 :   전적(典籍)  /  문화예술, 전적, 필사본
출토(소)지 :   선암사
연대(시기) :   1901-1905년
상세설명
白紙墨書華嚴經寫經
寫本: 仙岩寺(1901年 寫經, 1917年 製冊), 20冊
特徵: 四周雙線, 半葉 19×15cm, 有界, 半葉 10行20字, 無魚尾
寫記: 擎雲元奇焚香拜書
부처가 도달한 정각(正覺)의 모습과 위대함을 10지(地)의 인행(因行)으로 나타낸 대승경전. 이 경전에는 대승 이전의 다양한 초기경전들이 수록되어 일종의 집성경(集成經)과 같은 성격을 보이고 있다. 한역본(漢譯本)으로는 권수에 따라 불타적타나(佛陀跋陀羅) 번역의 60화엄, 실차난타(實叉難陀) 번역의 80화엄, 반야(般若) 번역의 40화엄 등 3역본이 있다. 이 3본 화엄경은 모두 우리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으며, 기본적으로 7처 8회 34품으로 일관성 있게 구성되어 있다. 60화엄에는 34품, 80화엄에는 39품이 있으며, 40화엄은 60권본과 80권본의 마지막 장인 「입법계품(入法界品)」만을 별역한 것으로 그 내용에는 큰 차이가 없다. 화엄경의 한역본이 출현된 이래 우리나라 및 중국에 화엄사상을 형성하였을 뿐 아니라. 그 회통사상은 동양사상의 큰 주류를 형성하여 정신문화의 창조에 밑거름 구실을 하였다. 우리나라 화엄종(華嚴宗)의 소의경전(所義經典)으로 불교 전문강원의 대교과 과정에서 학습되었던 불교 최고의 경전이다.
화엄경은 삼국시대에 유통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 넘어오면서 신라 화엄학이 정립되고 아울러 화엄종이 성립되어 화엄사찰이 건립되기에 이르고 이른바 화엄사상이 정립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 전해 오는 가장 오래된 화엄경은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에 장엄되었던 「화엄석경(華嚴石經)」과 국보로 지정되어 호암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 「신라백지묵서화엄경사경(新羅白紙墨書華嚴寫經)」이다.
고려시대에 와서도 균여(均如)·의천(義天)등의 고승에 의하여 화엄경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많은 연구 주석서가 전해오고 있다. 이 당시 간행(刊行)으로는 1020년에 현화사(玄化寺)에서 삼본화엄경(三本華嚴經)을 판각한 기록이 비문에 보이고 있으며, 해인사(海印寺)에는 삼본화엄경판이 1098년에 판각된 것과 1200년대에 판각된 것이 보존되어 있다. 이밖에도 해인사에서 판각된 1098년 간기가 있는 진본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진본(晉本)·주본(周本)·정원본(貞元本) 대장경이 여러 종 보존되고 있다. 또한 이 무렵의 간행된 증륜사판(拯倫寺板)도 전해지고 있어 고려 숙종 떄 삼본화엄경이 모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영주 부석사에도 삼본화엄경판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들은 매행 34자씩 배열되어 있어 거란본의 영향을 받은 경판(經板)으로 13세기경에 판각(板刻)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처럼 화엄경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찍이 삼국시대 이래로 사경(寫經), 석경(石經), 목판본(木板經) 등의 다양한 형태로 조성되었다. 선암사(仙岩寺) 소장본은 다듬질이 잘된 두툼한 장지에 쓰여진 사경이다. 권수(卷首)에는 하정(荷亭) 여규형(呂圭亨)의 서문을 비롯하여 매천(梅泉) 황현(黃玹), 무정(茂亭) 정만조(鄭萬朝), 염생(恬生) 송태회(宋泰會), 선각거사(善覺居士) 권중현(權重顯), 운양거사(雲養居士) 김윤식(金允植) 등 당대 명가들의 서문(序文)이 차례로 수록되어 있으며, 또한 남파(南坡) 김효찬(金孝燦), 난와(蘭窩) 윤익조(尹翼朝), 유당거사(酉堂居士)의 찬송(贊頌)이 실려 있다. 경문의 사경은 「세계묘엄품제일(世主妙嚴品第一)」부터 시작되고 있다. 이 화엄사경은 ‘우전국삼장사문(于闐國三藏沙門) 실차난타역(實叉難陀譯)’이란 역자(譯者)표시로 보아 주본(周本) 80화엄을 대상으로 사성(寫成)되었음을 알 수 있다. 권1의 말엽에 ‘경운원기분향배서(擎雲元奇焚香拜書)/시봉혜장(侍奉慧藏)’과 ‘교증(校證) 청호화일(淸浩華日)/현허의선(玄虛義宣)’이 기록되어 있어, 경운스님이 사경했던 사실을 밝히고 있다.
앞뒤의 표지는 연두색 비단로 장책(粧冊)되어 있으며, 표제는 제첨(題簽)을 부치고 그 위에 ‘화엄경(華嚴經)’으로 묵서(墨書)되어 있다. 서체는 수당(隋唐)대의 전형적인 사경체(寫經體)와는 달리 매우 해정한 해서체(楷書體)로 쓰여져 있다. 서문 중에는 광무(光武) 신축년(辛丑年 1901), 광무(光武) 9(1905)년과 정사(丁巳 1917)년에 쓰여진 것이 수록되어 있는데, 「선암사사적비(仙岩寺事蹟碑)」를 지은 하정(荷亭) 여규형(呂圭亨) 서문에는 사경이 정유(丁酉, 1897)에 시작되어 신축(辛丑 1901)에 끝마친 것과 일행삼배(一行三拜)의 지극한 정성으로 사경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전후의 사실로 보아 이 사경은 경운스님에 의해서 1897년에서 1901년까지 5년 동안 쓰여 졌으며, 그 후 1917년에 운양(雲養)의 서문을 수록하여 제책(製冊)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의 감지(紺紙)에 금은니(金銀泥)로 쓰여진 장엄한 사경에서 조선전기에는 백지(白紙)에 묵서(墨書)한 사경(寫經)으로 변화된 특징을 보이고 있는데, 그나마 조선후기에는 이러한 묵서사경 조차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 점에서 선암사의 「백지묵서화엄경사경(白紙墨書華嚴經寫經)」은 80화엄을 저본으로 사성하여 20권으로 선장(線裝)한 매우 귀중한 사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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